ENDRALON.SPACE · ČLÁNEK
5. 7. 2026
내 생애의 두 가지 사랑
컴퓨터 앞에서 5분 이상 있어 본 적도 없는 여자의 조언을 듣고, 편안하게 일할 수 있기는커녕 제대로 앉아조차 있을 수 없는 버틀러스(Butlers) 안락의자를 산 것을 후회했던 것처럼 말이다. 그자의 의자에 앉은 지 이틀째가 되어서야 그것을 깨달았다. 그것은 내가 사랑했던 일을 떠나는 일이었다. 긴 여정에 가지고 가서 내 친구에게 보여주는 대신, 집에 남겨두었던 사진들과 편지들, 그리고 […]

컴퓨터 앞에서 5분 이상 있어 본 적도 없는 여자의 조언을 듣고, 편안하게 일할 수 있기는커녕 제대로 앉아조차 있을 수 없는 버틀러스(Butlers) 안락의자를 산 것을 후회했던 것처럼 말이다. 그 의자에 앉은 지 이틀째가 되어서야 그것을 깨달았다.
그것은 내가 사랑했던 일을 떠나는 일이었다.
긴 여정에 가지고 가서 내 친구에게 보여주는 대신, 집에 남겨두었던 사진들과 편지들.
이 모든 후회에는 공통점이 하나 있다. 어떤 여자가 내 결정에 참견했고, 나는 그녀의 말을 따랐다는 것이다.
여자들이 내게 무언가를 가르쳐주었다면 – 그것은 바로 내 경험하고, 느끼고, 생각하고, 결정하는 과정에 참견하게 두지 않는 것이다. 조언을 구하다고요? 그렇다. 하지만 내가 내 의견을 완전히 정립한 후에야 한다. 그리고 모를 때는 – 물어볼 것이다.
결과적으로 여자들은 이로 인해 나를 영원히 잃게 되었다. 모든 여자는 남자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사람이 되고 싶어 하는 것 같고, 그래서 남자의 일에 참견하는 듯하다. 그리고 그 남자를 잘 모를수록 – 아니 정확히는 그의 과거를 잘 모를수록 더욱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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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기억을 떠올리면, 쪼그려 앉아 밤을 줍고 있는 내 모습이 보인다. 어린 시절 내내 나는 밤을 주웠다. 그리고 라즈니쉬에게 상처를 준 무언가가 있다면, 그건 바로 400킬로그램의 밤을 주워 온 그에게 자동차 모형 하나로 보상해 준 학교 체제였을 것이다. 당시에는 그것을 '앙글리차크'라고 불렀다. 학교에서는 아마 내가 인형놀이를 하고, 방과 후에는 장난감 가게 쇼윈도에서 바비를 구경한다는 사실을 눈치채지 못했던 모양이다.
라즈니쉬가 언젠가 엉터리 조언을 한 적이 있다면, 그것은 초등학교 시절 내 학급 문예지 《배낭》에 실었던 바비 인형 머리 빗기 가이드였을 것이다. 《배낭》은 고학년 학생인 호라크와 헤이세크가 '사랑, 섹스 그리고 다정함' 코너에서 침대에 누부신 연인들의 내 그림에 거대한 성기를 그려 넣기도 했던 격주간지였다. 성기를 그려 넣은 사람이 딴사람이라는 게 뻔히 보였는데도 나는 교장실로 불려 갔다. 집에서 부교재용 경석으로 바비 인형의 머리카락을 빡빡 문질러 망가뜨린 여학생들 대신에 차라리 내가 그 교장실 바닥에 불려 갔던 게 나았을 텐데 말이다.
하지만 보시다시피 나는 어릴 때부터 조언을 하곤 했다. 그리고 그 버릇은 지금까지 남아 있다. 지금은 조금 더 세련되어졌을지도 모르지만, 타로 카드 역술가인 내게서 정보를 건네받고는 머리를 갸웃거린 여자 고객이 한둘이 아니었다. 가장 기묘한 예로는 이 책의 편집자에게 침대 위에 칼을 걸어두고 그 아래에서 자라고 조언했던 일을 꼽을 수 있겠다. 그녀가 이 책의 편집자라는 사실은 내 조언이 효과가 있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교장실에 불려 간 것은 한 번 더 있었다. 노래 경연 대회에 가는 길에 《섹스 농담 주머니(Sex srandokaps)》를 사서 반 친구들과 함께 보며 놀았다는 이유였다. 음악 선생님은 내게 네가 설마 그럴 줄은 몰랐다고 말씀하셨다. 《섹스 농담 주머니》는 18세 미만 구독 불가였고 꽉 막힌 사람들에게는 팔지 않는 잡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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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즈니쉬는 아테네로 가는 버스 안에서 엄마와 함께 버스 바퀴 위쪽의 높은 좌석에 앉아 있던 그 여행 중에 태어나기 시작한 것 같다. 그리고 나는—영화 '연인'이 극장에 걸렸던 바로 그 1993년이었는데—'이스트윅의 마녀들'에 나오는 데릴 반 호른의 이야기 삼매경에 빠져 있었다. 그의 캐릭터 묘사와 책의 에로틱한 저류에 매료되었던 것이다. 동명의 영화는 그로부터 수년이 지난 후에야 보았다.
그리스. 나는 '모르스키 코니크' 여행사를 통해 그곳을 한 번 더 방문했다. 그때 나의 유일한 두려움은 다른 사람들과 비교해 내가 무쇠처럼 건강하다는 사실이 들통나는 것뿐이었다—물론 내 건강과 관련해 결석 횟수만큼은 우리 학교에서 단연 1등이었지만 말이다.
그런데 왜 그리스 이야기를 하느냐고? 1993년 그리스에서 여행 가이드가 델포이의 시인의 샘과 신탁에 대해 이야기해 주었고, 나는 그때 델포이를 방문하는 대신 시인의 샘으로 향하는 여정을 선택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델포이는 나를 호락호락하게 두지 않았다. 1993년, 나는 열두 살이었다—그리고 이미 그때부터 내 삶의 두 가지 사랑인 시와 카드가 나를 유혹하고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