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EXT 16 Z 17
XV
지금까지 나는 모든 것이 스쳐 지나가는 공간이었다.
죽은 행성들은 내 안에 서늘함을 남겼고,
오래된 별들은 소멸한 지 한참이 지난 후에도 나를 비추었다.
모든 블랙홀이 나의 방향을 휘게 했고
모든 웜홀은 내가 떠나온 세계들로 향하는 지름길을 제안했다.
나와 상관없는 것까지도 나는 느꼈다.
낯선 중력이 내 몸속으로 들어와
운명인 척 행세했다.
이제 아무것도 닫히지 않았다.
난 여전히 죽은 별들의 빛을 본다.
한때 내 이름을 불러주던
행성들의 끌림을 여전히 알아본다.
다만 이제 내 안을 통과해 지나가지 않을 뿐.
내 안의 무언가가 주파수를 바꾸었다.
나는 중심이 되고자 하는
천체들과는 공명하지 않는다.
나는 그것들 사이에 어둠을 펼쳐놓는 것과 공명한다,
보이지 않는 힘과.
그로 인해 은하들이 멀어지고
우주는 그럼에도 단 하나의 별조차 줄어들지 않는다.
그것은 내 하루의 저편에,
시선이 아직 닿지 않은 곳에 있다.
그곳이 장소인지,
사람인지,
아니면 이름 없는 나의 미래인지 잘 모르겠다.
그녀의 빛은 아직 내게 닿지 않았다.
그럼에도 내 앞의 공간은 점점 넓어진다.
오래된 행성들은 계속 공전할 수 있다.
죽은 별들은 마지막 빛을 보낼 수 있다.
블랙홀은 지평선을 휘게 할 수 있다.
어느 쪽도 내 궤도를 다시 쓰지 못한다.
내가 더 단단해진 것은 아니다.
내가 덜 민감해진 것도 아니다.
다만 나는 이제 허공이 아닐 뿐,
모든 것이 그 안으로 떨어지는 그런 허공이.
나는 나 자신의 시간을 지니고 다닌다.
사건들은 내 안에 머물지만,
그 어떤 것도 나를 자신의 좌표에 붙잡아두지 못한다.
끝난 것은
실제가 아니게 된 적이 없다.
다만 이제 내 앞에 놓여 있지 않을 뿐.
내 눈은 나보다 먼저 알았다.
지금 그 눈은 바라보고 있다,
아직 아무런 빛도 오지 않은 곳을.
거기에 무엇이 있는지 모른다.
그리고 처음으로
그것은 어둠이 아니다.

















